"공백은 없어요" 안지해(왼쪽)-전진민이 14일 2021년 추계 한국 실업소프트테니스 연맹전 혼합 복식 우승 시상식을 마친 뒤 코트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실업소프트테니스연맹돌아온 탕아가 아니다. 돌아온 에이스다. 2021년 추계 한국 실업소프트테니스 연맹전에서 긴 공백을 마치고 돌아온 선수들이 우승을 합작했다.
28살 동갑내기 전진민(수원시청)-안지해(부산 사하구청)가 주인공이다. 둘은 14일 전북 순창공설운동장 내 소프트테니스장에서 열린 대회 혼합 복식 결승에서 윤지환(수원시청)-권란희(사하구청)를 5 대 2로 눌렀다.
전진민과 안지해는 처음 짝을 맞춘 복식조라는 점이 무색할 정도로 찰떡 호흡을 보였다. 16강에서 베테랑 이수열(대구 달성군청)-김현진(화성시청), 4강전에서 오승규(순창군청)-고은지(옥천군청)를 5 대 0으로 완파한 기세를 몰아 결승에서도 각자 팀 동료를 제쳤다.
이번 대회 혼합 복식은 추첨을 통해 조가 이뤄졌다. 호흡을 맞출 시간이 없는 만큼 경기를 치르면서 전술을 짜야 한다. 실제로 전진민과 안지해는 이전까지 서로 말도 거의 해본 적이 없는 사이였다고.
'사실 좀 서먹해요' 둘은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복식 호흡을 맞췄다. 모두 조만간 교제해온 이성과 결혼 계획이 있다고. 연맹무엇보다 한동안 소프트테니스를 떠나 있다가 돌아와 거둔 우승이라 더 값졌다. 먼저 전진민은 지난 7월 25일 군 제대를 마친 뒤 불과 한 달여 만에 정상에 올랐다. 전진민은 13일 열린 남자 단체전 결승에서도 김진웅과 짝을 이룬 복식에서 승리하며 팀 우승에 기여, 2관왕에 올랐다.
전진민은 "강원도 철원에서 통신병으로 복무하다 전역했다"면서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혀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는데 성적이 잘 나와서 좋다"고 활짝 웃었다. 전진민은 앞서 열린 제 99회 동아일보기 전국대회 단체전 준우승에도 힘을 보탰다.
수원시청 임교성 감독은 "전진민이 합류하면서 전력이 크게 강화됐다"면서 "단체전 우승은 오랜만인데 마지막 퍼즐이 맞춰줬다"고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전진민이 병장 말년 때 라켓 등 장비를 보내달라고 하더라"면서 "주말을 이용해 부대에서 훈련을 하는 등 열정을 보였다"고 귀띔했다.
전진민은 입대 전인 2019년 대통령기 단식과 복식, 전국체전 우승을 차지하는 등 준수한 성적을 냈다. 1년 반 동안의 군 공백이 있었지만 빠르게 감각을 되찾았다. 전진민은 "내가 잘했다기보다 좋은 동료들이 도움을 줬고, 시청 관계자 분들이 지원을 잘 해주셔서 이긴 것 같다"고 겸손한 소감을 밝혔다.
이번 대회에서 첫 복식조를 이룬 두 선수가 호흡을 맞추는 모습. 연맹안지해는 전진민보다 더 긴 공백이 있었다. 대구은행 시절이던 2017년 현역에서 은퇴했던 안지해는 2년 동안의 외도(?)를 마치고 지난해 친정팀 사하구청에 복귀했다.
당시 은퇴에 대해 안지해는 "여자 선수들이 너무 잘 하고 상대적으로 실력이 떨어져 포기한 상태였다"고 돌아봤다. 이어 "운동 말고 다른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면서 "평소 관심이 있던 피부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말했다. 피부과에 취업하거나 자신의 샵을 운영하는 등 제 2의 인생을 준비하던 차였다.
하지만 옛 스승인 사하구청 김동진 감독의 권유에 다시 라켓을 잡았다. 김 감독은 "아직 실력이 있는데 너무 아까웠다"면서 "1년 동안 설득 작업을 한 끝에 예전 동료들의 품으로 돌아왔다"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실력은 그대로였다. 안지해는 복귀하자마자 지난해 6월 첫 대회인 춘계 실업연맹전에서 홍경화와 여자 복식 정상에 올랐다. 안지해는 "은퇴 전에 그래도 내 존재감을 알려서인지 다른 선수들이 견제를 하더라"면서 "복귀 첫 대회에서 우승해서 너무 기뻤다"고 말했다.
전진민(왼쪽), 안지해가 14일 시상식을 마치고 포즈를 취한 모습. 연맹그런 안지해는 올해도 두 번째 정상에 올랐다. 지난 5월 임미현과 나선 종별선수권대회 복식에 이어 이번 실업연맹전에서 혼복 우승을 차지한 것. 안지해는 전진민을 보며 "파트너를 잘 만났다"면서 "뒤에서 잘 쳐줘서 이겼다"고 공을 돌렸다.
어려운 여건에서 우승해 의미가 컸다. 사하구청은 29년째 꾸준히 팀을 지원해주고 있지만 NH농협은행, 대구은행, 문경시청, 옥천군청 등 규모가 더 큰 팀들에 살짝 밀리는 상황이다.
우승을 거뒀지만 전진민, 안지해는 보완할 점도 적잖다. 소속팀 감독들은 "둘 모두 기교보다는 정통파로 강한 스트로크를 구사한다"면서 "클레이 코트는 강하지만 구질 변화가 심한 하드 코트에서 약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대회 역시 클레이 코트에서 진행됐다.
공백이 있었던 만큼 남은 선수 생활에 대한 목표도 확실하다. '군 제대로이드'가 충만한 전진민은 "2019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5위로 아쉽게 탈락했다"면서 "내년 항저우아시안게임과 2023년 세계선수권대회 태극마크를 달고 싶다"고 강한 의욕을 드러냈다.
안지해는 "일단 복귀했을 때만 해도 만 30살 정도까지 선수로 뛰고 싶다는 생각이었다"면서도 "김 감독님이 은퇴할 때까지 팀에 도움을 주고 싶은데 그러려면 5년은 더 뛰어야 할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 김 감독은 "14일이 내 생일이었는데 지해가 뜻깊은 선물을 해줬다"고 화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