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 연합뉴스북한의 러시아 파병 소식에 우리 정부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의 공조 확대 등 맞불을 놓으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미국과 나토는 점차 발을 빼는데 남·북은 오히려 불을 지피며 '역주행'에 나선 양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21일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 통화에서 북한군 파병 사실을 확인한 뒤 "러북 군사협력의 진전에 따른 단계별 조치를 적극 취해 나갈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나토 및 나토 회원국들과 실질적인 대응 조치를 함께 모색해 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뤼터 사무총장이 상세한 정보 공유를 위해 대표단을 보내달라고 하자, 신속한 파견 방침과 함께 '한국-우크라이나-나토' 간 안보협력 활성화 조치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데이비드 래미 영국 외무장관을 접견한 자리에서도 북한군 파병 등을 거론하며 "영국 및 나토와 긴밀히 공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방한한 데이비드 래미 영국 외무장관을 접견하며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정부의 강경 입장은 이날 김홍균 외교부 1차관이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러시아대사를 초치할 때부터 예견됐다.
김 차관은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등 불법적인 군사협력을 가장 강력한 언어로 규탄하고, 우리 핵심 안보이익을 위협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와 공동으로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응해 나갈 것임을 엄중히 경고했다고 외교부는 밝혔다. 정부 소식통은 "메시지가 예상보다 셌다"고 전했다.
비슷한 시각 김용현 국방부 장관도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를 접견하고 러북 군사협력 심화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특히 북한의 파병과 관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국제사회와 공조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러시아에 대한 독자제재와 병행해 우크라이나에는 살상무기 지원은 물론 군사참관단 파견도 원칙적으로는 검토 대상에 올려놓고 있다.
다만 군사참관단 파견은 국회 동의가 필요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확전을 바라지 않는 미국도 동의할 가능성이 낮다. 살상무기 지원도 야당의 반대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미국은 지난 18일 우리 정부의 북한군 파병 사실 확인에도 불구하고 나흘째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21일 김용현 장관을 면담한 골드버그 미국대사도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1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군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SPRAVDI)가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군인들이 줄을 서서 러시아 보급품을 받고 있다고 공개한 영상. 우크라군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 X캡처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공사)은 "북한군 파병설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거나, 신뢰하더라도 그 사실을 인정할 경우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을 해줘야 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현재 러시아 본토를 공격할 장거리 미사일 사용 허가에 목을 매다시피 하고 있지만 미국과 나토는 요지부동이다. 러시아의 핵교리(핵무기 사용 원칙) 변경으로 확전에 따른 위험 부담이 훨씬 커졌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유럽 내에서 전쟁 '피로감'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고 11월 미국 대선의 향배 등 국제정세가 유동적인 것도 우크라이나 지원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요인이다.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 국제전략연구실장은 "젤렌스키 혼자만 애쓰고 있을 뿐 유럽은 다 지쳤고 발을 빼고 싶어하는 정서가 팽배하다"며 "미국 대선이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설 전 육군역사연구소장(예비역 준장)은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지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사실상 참전국 지위가 되면 어느 정도는 책임을 져야 한다. 전쟁이란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며 정부의 냉철한 대응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