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의성군 대형 산불 발생 사흘째인 24일 산불 현장에 인접한 의성군 옥산면 입암리 한 마을에 불씨가 옮겨 붙으며 소방대원이 불을 끄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인 산불이 잇따라 발생한 가운데, 이를 진화하던 산불전문 예방진화대원 3명이 숨지는 등 인명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사고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진화대원 평균 연령은 이미 60세를 넘겼고, 일부 지역에서는 최고령자가 80대에 달한다. 반복되는 고령자 사망사고에도 체계적인 대책은 부족하며, 일부 지자체는 체력시험 난이도를 낮추거나 아예 시험을 생략하는 실정이다.
전문성보다는 인력 충원에 급급한 현실, '노인 알바'라는 오명, 낡은 장비와 인력 구조의 고령화까지 산불 현장의 최전선은 지금, 구조적 한계에 가로막혀 있다.
경남 창녕 산불 진화중 3명 순직… 반복되는 인명 피해
25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경남 창녕군 소속 산불진화대원 9명은 지난 22일 진화 작업 중 역풍을 타고 번진 화염에 휩싸였다. 이 사고로 인솔 공무원 1명과 민간 진화대원 3명 등 총 4명이 숨졌고, 나머지 5명은 웅덩이에 몸을 피한 끝에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이들 역시 3도 화상을 입어 화상 전문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경북 의성군 안사면 중하리 야산에서는 영주시 산불예방전문진화대 소속 대원 4명이 불길에 고립됐다. 산림청 헬기 4대가 물을 투하하고, 공중진화대 구조요원 3명이 투입돼 수색 작업이 이뤄졌으며, 이들은 다행히 무사히 하산했다.
"10층 오르다 숨졌다"… 시험장에서 쓰러진 고령자들
진화대원이 되기 위한 체력검정 과정에서 숨진 사례도 있다. 지난 21일 전남 장성군의 진화대원 채용에 지원한 유모(76) 씨는 체력검정 중 10kg 펌프를 메고 아파트 10층 높이를 오르다 쓰러져 숨졌다. 유족들은 "구급차와 제세동기 없이 한파 속에서 시험이 강행됐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지원자 76명 중 60세 이상은 59명, 70세 이상은 숨진 유씨를 포함해 27명에 달했다. 현장에는 보건행정팀 소속 간호사 1명만이 대기 중이었다.
유사한 사고는 과거에도 반복됐다. 2020년 대구 군위·경남 창원·울산, 2021년 충북 단양과 전북 장수 등에서 체력 검정 중 지원자가 숨지는 사고가 잇따랐다.
2022년 대구 수성구에서는 66세 산불감시원 지원자가 15kg 등짐 펌프를 메고 시험을 치르다 사망했다. 이 시험에서는 감시원과 진화대원 23명을 선발할 예정이었고, 지원자 48명 중 대부분이 60대 중후반 이상이었으며, 70대도 포함돼 있었다. 지금까지 체력검정 중 사망한 지원자는 모두 60대 이상 고령자로 확인됐다.
낮아지는 시험 기준… 진화 역량 검증은 '부실'
연합뉴스이처럼 진화대원을 뽑기 위한 시험에서 인명사고가 계속되자 일부 지자체는 체력검정의 난이도를 낮추거나 순발력 시험을 아예 제외하는 추세다.
한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는 "지원자 대부분이 고령이기 때문에 순발력 테스트는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현재는 지구력 테스트만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산림청에서는 체력검정 방식에 대해 지자체 자율에 맡기고 있어, 지역별로 자체 기준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전남 광양시와 강진군은 체력검정을 실시하지 않았고, 장성군은 사망 사고 이후 시험 난이도를 크게 완화했다. 그러나 고령층도 무리 없이 통과할 수 있는 수준으로 기준이 낮아지면서, 실제 산불 진화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진화대원 평균 연령 60세 넘어… 최고령 81세
연합뉴스2003년 도입된 산불예방전문진화대는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평균 7개월간 운영되며, 현재 전국적으로 9064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평상시에는 차량을 이용해 산불 감시와 예방 캠페인을 벌이고, 산불이 발생하면 즉시 진화 현장에 투입된다.
진화대원들의 고령화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2022년 기준 전체 진화대원 평균 연령은 61세이며, 65세 이상 비율은 33.7%에 달한다.
강원특별자치도 산불방지센터에 따르면, 도내 18개 시·군 진화대원 1118명의 평균 연령은 63.3세였다. 철원군은 68세로 가장 높았고, 동해·양구는 66세, 태백·횡성·평창·정선·고성 등도 평균 65세로 집계됐다.
충북도 마찬가지다. 올해 충북에는 산불감시원 825명, 산불진화대원 658명이 활동 중인데, 양측의 평균 연령은 모두 60세를 넘는다. 부산광역시 역시 구·군에 소속된 진화대원 136명 대부분이 65세 이상으로, 고령화 문제는 전국적으로 확산된 상태다.
이와 함께 산불 진화 장비의 노후화도 문제로 지적된다.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 강원 동해안 6개 시·군에는 진화차량 67대가 배치돼 있는데, 이 중 13대는 내구연한 10년을 초과한 노후 차량이다.
최저임금, 단기계약… '노인 알바'라는 씁쓸한 현실
산불 진화 현장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조직 중 산림청이 직접 운영하는 산불재난특수진화대는 전국 지방산림청 5곳, 국유림관리소 27곳 등 총 32개 조직에 소속된 435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공무직 무기계약직으로 월 280만원을 받는다.
공중에서 진화를 담당하는 공중진화대는 총 104명이 활동 중이며, 이 역시 산림청 소속이다. 반면 산불예방전문진화대는 지자체 또는 산림청 위탁 형태로 운영되며, 하루 일당은 약 9만원 수준으로 최저임금이 적용된다.
단기계약직에 불과한 데다 농촌과 산간 지역 중심으로 운영되는 구조상, 젊은 인력이 유입되기 어려워 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과거에는 55세 연령 제한이 있었으나, 인력 부족 문제로 현재는 이마저도 폐지된 상태다.
또 다른 문제는 '중복 제한' 제도다. 과거에는 한 사람이 여러 차례 진화대에 지원하고 활동할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중복 참여자에게 감점을 부여하는 규정이 도입됐다. 그 결과, 경험 있는 인력 대신 신규 인력 위주로 구성되면서 현장의 전문성 저하가 우려되고 있다. 인력난이 심각해 모집 공고를 여러 차례 반복하고, 연령과 관계없이 뽑을 수밖에 없는 지자체들도 늘고 있다.
한편 이날 오전 5시 기준 전국의 산불영향구역은 1만4693.61ha에 달한다. 22만9539㎡ 크기인 서울 여의도 면적의 640배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