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건강보험제도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부러워할 정도로 짧은 기간에 성장해왔다. 그러나 부과체계에 대한 불만은 끊이지 않고 있다. 부과체계가 직장-지역으로 이분화 돼 수익이 안정적인 직장인들에 비해 영세 자영업자나 무직자들이 보험료를 많이 내는 소득 역진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 허술한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도 갈수록 늘고 있다. CBS는 현재 건강보험 부과체계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3회에 걸쳐 살펴본다.[편집자 주]
사진/이미지비트 제공
연예인 자산가 등 고소득자들은 각종 수법을 동원해 빼돌리고, 가난한 지역가입자들에게는 고스란히 빚으로 쌓여가는 불합리함. 중고차에 점수를 매겨 보험료를 계산하는 20년된 낡은 기준. 현행 건강보험 부과체계에 대한 불만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쓰임새는 같은데 돈을 거둬들이는 방식이 직장-지역으로 분리돼 있다보니 발생하는 문제들이다.
◈직장인 유리지갑으로 지탱되는 건보료, 줄줄 새는 금융 자산 소득도 매겨야형편이 어려운 지역가입자들은 월세는 물론 자동차까지 보험료가 매겨지는 것이 가혹하다고 말한다. 월 100만원을 벌어도, 작은 집에 차 한 대가 있으면 17만원이 부과된다. 지역가입자 보험료 산정 방식은 하도 복잡해 건보공단 직원들도 이해 못할 정도다.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불만이다. 오로지 급여에만 보험료가 계산되다보니 금융, 자산 소득을 올리는 부자들과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고 느낀다. 월급은 뻔한데 부과체계를 개선한다고 하면 유리지갑 탈탈 털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부터 나온다.
가입자들이 저마다 불만을 가진 상황에서는 최대치가 수긍할 수 있는 일원화된 체계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어떤 방안이 합리적일까.
건강보험공단에서는 '소득 중심으로 부과체계를 단일화하자'고 주장한다. 소득에는 근로소득 이외에도 금융소득, 사업소득, 양도소득, 상속 및 증여, 퇴직소득 등이 있는데 여기에 건강보험료를 매기자는 것.
현재는 직장가입자의 근로소득에서 매겨지는 보험료가 전체 보험료 36조3900억원에서 29조3797억으로 80.7%를 차지한다. 직장인의 유리지갑이 건강보험체계를 지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금융소득, 사업소득, 양도소득, 상속 및 증여 등의 기타 소득은 상당 부분 빠져있다. 건보료의 가장 큰 구멍이다. 나머지 19.3%는 지역가입자들에게 재산, 자동차 등에 복잡한 점수를 매겨 보험료를 부과하고 있다.
유리지갑만 가지고 있는 서민 직장인과 소득이 거의 없는 지역가입자가 다소 손해를 보는 구조인 것이다. 이자나 건물 임대료, 고액연금 등 다른 두툼한 지갑들을 가진 고소득자는 형평성 차원에서 상대적으로 이익을 보고 있다.
직장-지역가입자 구분을 없애고 피부양자 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근로소득 뿐 아니라 금융, 자산, 양도, 상속, 퇴직 소득 등 모든 소득에 보험료를 부과하면 부과체계를 통일할 뿐 아니라 형평성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
◈ 소득중심으로 개편하면 전체 92% 보험료↓ 7% 보험료↑건강보험료가 소득 중심으로 개편되면 어떻게 될까? 건강보험공단이 추정한 결과는 놀랍다.
현재 공단에서 확보하고 있는 종합소득 자료를 기준으로 시뮬레이션을 실시한 결과 전체 세대의 92.7%가 현재보다 보험료 부담이 오히려 줄고, 7.3% 세대의 보험료만 인상되는 것으로 나왔다. (표 참고)
특히 실직자, 노인, 농어민 등 지역가입자의 97.9%는 보험료가 지금보다 내려가고, 직장가입자 중에 다른 소득 없이 근로소득만 있는 세대 중 89.7%가 보험료 인하 혜택을 받는다.
반면 소득이 있지만 직장인에 올라타 건보료를 피해왔던 피부양자 214만명의 부담이 늘어난다. 금융, 양도, 상속, 증여, 퇴직 소득을 가진 피부양자들은 보험료를 내야한다.
대다수 서민들의 보험료가 내려가고, 피부양자나 직장가입자에 묶에 있던 일부 고소득자들의 보험료가 대폭 인상되는 시나리오인 것이다.
국세청으로부터 아직 확보하지 못한 미공개 소득 자료까지 포함한다면 전체 세대의 80~90%의 보험료는 내려가고, 10~20% 세대의 보험료는 올라갈 것으로 공단은 예상하고 있다.
◈고소득자 저항 불 보듯 뻔해.. 국민 대합의 이끌 정치력 절실보험료가 인상되는 10~20%의 반발은 불보듯 뻔하다. 지금도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안이 마련될 때마다 기득권층을 중심으로 각종 로비가 펼쳐진다.
일례로 연금소득이 연 4천만원을 초과하면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없애자는 안은 세차례 무산됐다가 여론에 밀려 1년만에 겨우 통과됐다.
연금수령액이 연 4천만원을 넘는 사람들은 국장급 고위공무원이나 군장성 출신들이 대부분인데 이들의 반발과 로비는 정부안을 번번이 불발시켰다. 총리실 규제개혁위원회를 어렵게 통과한 뒤에도 안전행정부의 강렬한 반대에 부딪혔고 법제처에서 장기간 발목이 잡히기도 했다.
대상자는 2만4천여명에 불과했지만 이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오랜 기간 변화를 막은 것이다.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도 이같은 상위 20%의 저항과 홍역을 치를 수 밖에 없다. 건보료 문제가 해가 지날수록 곪아왔지만 역대 정권에서 관성의 법칙에 따른 것도 이 때문이다.
다행히 이번 정권은 소득 중심의 부과체계 개편안을 국정과제로 채택해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전문가와 노사 대표로 구성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 기획단'을 출범시켰다. 기획단은 연말까지 개선안을 마련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결과를 보고할 예정이다.
◈단계적 개선 vs 대대적 수술... 정부 추진 의지가 관건기획단 내부에서는 소득 중심의 부과 체계 개편에 대해서는 모두 공감하면서도 단계적으로 수정하자는 안과, 한꺼번에 틀을 바꾸자는 기류가 미묘하게 나뉘고 있다.
사공진 한양대 교수는 "단계적으로 소득에 보험료를 부과하면 그때마다 계속해서 저항이 있을 것이다"면서 "국민의 동의를 충분히 얻으면서 한꺼번에 사회적 빅딜을 하는 것이 오히려 빠른 길이다"고 말했다.
그때그때 제도를 바꾸다보면 저항이 단발적으로 심해질 뿐더러, 가뜩이나 복잡한 부과체계를 누더기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김진수 연세대 교수는 "재산을 줄이고 소득 중심으로 가는 방향은 공감하지만 사회적 저항을 고려했을 때 단계적으로 갈 수 밖에 없지 않겠냐"고 의견을 냈다.
소득중심으로 한번에 개선하되, 적용 시기를 충분히 둬 사회적 혼란을 완충시키자는 의견도 있었다.
김진현 서울대 교수는 "소득중심으로 체계를 한꺼번에 고치는 대신, 적용은 몇년에 걸쳐 단계별로 해서 효과를 분산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의견을 냈다.
무엇보다 막 발걸음을 뗀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안이 이번 정권 안에 성과를 낼 수 있으려면 정부의 강력한 추진 의지와 국민 대합의를 이끌 여야의 정치력이 전제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