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으로 시작된 주택개발지구 땅 투기 문제가 '일파만파'다. 서민의 보금자리 마련에 힘써야 할 LH 직원들의 일탈에 대한 분노와 더불어 편법적인 방법을 동원한 투기 세력의 수법들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3기신도시 중 한 곳인 인천 계양신도시 주택개발지구에서 벌어진 토지 거래 사례를 중심으로 부동산 투기 세력의 다양한 투기 수법들을 짚어봤다. [편집자 주]
"이 정도면 투기수법의 종합전시장 수준입니다. 프로 투기꾼들의 흔적이 분명합니다."
2017년 5월부터 최근까지 인천 계양신도시 주택개발지구 내 이뤄진 토지 거래 상황을 분석한 인천의 한 공인중개사의 말이다. 최대한 적은 돈을 투자해 1~2년 만에 4배가 넘는 수익을 내거나 박리다매식으로 땅을 매입해 다량의 분양권을 확보하는 등 투기꾼들의 정석을 보여주는 거래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CBS노컷뉴스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5월 10일부터 LH직원들의 3기 신도시 개발부지 투기 의혹이 제기된 올해 3월까지 인천 계양신도시 개발지구 내에서 이뤄진 토지거래 전수를 분석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 분석 결과를 보면 이 기간 동안 이뤄진 토지거래 필지 건수는 61건(기간 내 중복거래 제외)으로 거래 면적은 13만 2434㎡이다. 토지거래자 수는 108명(중복 포함)에 이른다. 이는 땅 주인의 사망에 따른 상속 등 자연적인 토지 소유주 변화 사례를 제외한 수치다.
전체 토지 거래자 108명 가운데 95명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5월 10일부터 LH가 국토교통부에 3기 신도시 지역을 제안한 2018년 11월 사이에 개발지구로 지정된 토지를 사들였다. 문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관련 공약을 내건 만큼 당선이 되자 지구 지정이 유력한 지역을 미리 선점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기간 확인된 토지 소유자들 명단과 LH 직원 명단을 대조하면 9명의 이름이 일치한다. 다만 이들이 LH 직원인지 확인하는 작업은 조만간 정부 발표가 예정돼 있어 이에 대한 검증은 제외했다. 이번 분석에는 계양지구 인근 공인중개사, 법조인,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정치인 등이 참여했다. 관련 사례 선정은 투기 혹은 편법 거래 정황이 포착된 사례로 한정했다.
이 지역은 2016년 총선 당시 지역구 의원 공약으로 전체 산업단지로 추진되다가 공공주택도 들어선 곳이다. 이전부터 부동산시장에서는 투기의 대상으로 될 수 있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인천 계양 공공주택사업 예정지구 항공사진. 유튜브 캡처
◇계양신도시 큰손은 부동산 중개업자…3개월간 5개 필지 1만 3천㎡ 매입계양신도시 주택개발지구 내에서 가장 많은 토지 거래를 한 사람은 계양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 A씨였다. A씨는 국토교통부가 인천계양 지구를 3기 신도시로 고시한 2019년 10월15일보다 앞선 2019년 3월~6월 단 3개월 동안 5개의 필지를 사들였다.
A씨가 사들인 토지들은 동양동 400번지대 필지 3곳과 귤현동 100번대 필지 2곳으로 거래 면적은 1만3812㎡이다. 매매가격은 43억 9300만 원으로 이 가운데 26억 원을 대출로 충당했다.
현재 이 중개업자는 올해 1월 사들인 모든 토지들의 권한을 신탁업체에 위임했다. 향후 LH와의 보상 협상을 토지관리 전문업체에게 맡긴 것이다.
전문가들은 A씨가 해당 지역의 공시지가와 비교해 2배가 넘는 가격에 토지를 매입해 보상으로 인한 수입은 다른 투기자들에 비해 적지만 주택개발이 마무리되면 받을 수 있는 입주권, 이른바 '분양딱지'를 확보해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3기 신도시 개발지역 내 토지 소유자에게는 소유 토지가 1천㎡를 넘을 경우 입주권을 지급하고 있다.
◇쪼개기 매입과 차명 매입 정황도 발견돼취등록세를 줄이기 위해 쪼개기 거래를 하거나 차명 매입을 한 정황도 포착됐다. 인천 부평구 거주자 B씨 등 4명은 2017년 10월 동양동 100번지대 2036㎡ 규모의 토지를 3억6960만 원에 대출없이 공동매입했다. ㎡당 18만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그러나 5개월여 지난 2018년 3월 이들 가운데 2명이 나머지 2명에게 지분을 이전했다. 4명이 먼저 구매한 뒤 다시 이를 2명에게 지분을 몰아준 형국인데 취등록세 감면 혜택을 노린 거래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은 기준시가가 1억 원보다 낮을 경우 취등록세를 85% 감면하고 있다. 3억 6960만 원의 토지를 4명이 공동매입할 경우 1명당 매입가격은 1억 원 미만이 된다.
반면 2018년 11월 병방동 200번지대 1천293㎡ 규모의 토지를 3억 6천만 원에 매입한 계양구 거주자 C씨의 사례는 차명거래 의혹을 받는다. C씨는 은행으로부터 2억 5천만 원을 대출받아 토지를 매입했다. 그러나 다음 해 2월 C씨의 토지에는 C씨의 동거인과 타 지역 거주자 D씨 등 2명으로부터 3억 1200만 원의 근저당이 설정됐다.
근저당은 채무자가 채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미리 특정 부동산을 담보물로 저당 잡아 해당 담보에 대해 다른 채권자보다 먼저 변제를 받기 위한 권리를 설정하는 행위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근저당 설정이 해당 토지의 소유자가 C씨가 아닌 근저당을 설정한 채권자일 때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실제 매입자와 명목상 매입자가 다를 때 돈을 대는 실제 매입자가 명목상 매입자의 변심에 대비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강력한 제약을 둘 때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C씨가 향후 LH의 토지 보상을 받아 대출금을 상환하면 D씨의 근저당 설정이 남은 이익금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약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토지 매입 1년 만에 4배 이상 시세차익 추정 거래자도대출금을 최대한 늘려 투자금액을 최소화해 4배 이상의 차익을 남긴 거래자들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사는 E씨는 LH가 국토교통부에 인천 계양을 3기 신도시 후보지로 제안하기 하루 전인 2018년 11월22일 동양동 400번지대 4천998㎡ 규모의 3개 필지를 9억 2천만 원에 매입했다. ㎡당 매입가는 18만 원이다.
E씨는 이 땅을 매입하면서 진주의 한 은행으로부터 6억 3천여만 원을 대출받았다. 실제 E씨가 토지 매입을 위해 들인 돈은 2억 9천만 원인 셈이다. E씨는 지난해 말 LH로부터 보상을 받았고 해당 토지는 공용용지로 편입됐다.
현재 계양신도시의 토지 보상액이 ㎡당 40만 원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E씨는 최소 20억 원이 넘는 보상금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E씨가 토지 매입을 위해 실제 쓴 돈이 2억 9천만 원이기 때문에 투자금 대비 보상금은 4배가 넘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1천㎡당 1장씩 지급되는 입주권의 가치를 더하면 이익은 더 크다.
E씨가 계양신도시 개발부지를 매입한 다음 날인 2018년 11월 23일에는 E씨와 같은 동에 사는 F씨가 동양동 400번지대 5천226㎡ 규모의 1개 필지를 9억 8천만 원에 매입했다. F씨는 해당 토지를 구매하면서 E씨가 대출받았던 같은 은행에서 6억 8천만 원을 대출받았다. F씨는 현재 LH의 토지 보상을 기다리고 있다.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사는 E씨와 F씨가 서로 면식이 있는지, LH와의 연관성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F씨는 현재 진주의 모 건설업체 대표로 확인됐다.
이번 분석에 참여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인천지부 한필운 사무처장은 "이번 분석이 국토교통부에 기록된 토지거래 기록과 관련 부동산 등기부등본 등 서류로만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해당 행위가 전문 투기꾼들의 행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면서도 "정부의 투기 방지를 위한 장치들이 무기력하게 만든 정황이 발견된 만큼 보완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