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원태인이 지난달 31일 1위 결정전에서 역투하는 장면. 연합뉴스삼성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 선발 등판한 백정현. 연합뉴스
올해 프로야구 정규리그의 최종 순위를 결정한 마지막 날의 주인공은 KT 위즈의 윌리엄 쿠에바스였다.
쿠에버스와 원태인(삼성 라이온즈)의 1위 결정전 맞대결은 한국시리즈를 방불케 하는 긴장감 속에서 펼쳐졌다. 원태인은 6이닝 8탈삼진 1실점(비자책)으로 호투했지만 쿠에바스는 7이닝을 실점 없이 틀어막았고 1대0 승리를 이끌었다.
숨막히는 선발 맞대결이었기에 쿠에바스의 호투는 더욱 빛을 발했다. 못지 않게 원태인의 분전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빅 게임 피처'의 잠재력을 확인시킨 경기였다.
하지만 원태인은 포스트시즌 무대에서 제대로 빛을 볼 기회를 얻지 못했다.
원태인의 플레이오프 보직은 바로 불펜투수였다. 2차전에서 선발 백정현 다음으로 등판해 긴 이닝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았다.
허삼영 삼성 감독은 10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KBO 리그 플레이오프 두산 베어스와 2차전을 앞두고 준플레이오프 기간에 원태인의 보직을 결정했다며 원태인 대신 백정현을 2차전 선발로 결정한 이유는 "안정감"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백정현은 시즌 내내 좋은 투구를 했다. 성적만 보면 가장 안정적이다. 시즌 내내 꾸준하게 팀을 위해 던졌던 믿음과 신뢰 등을 따져서 뷰캐넌과 백정현 순서를 잡았다"고 설명했다.
백정현과 원태인 모두 정규리그 14승 투수다.
기록만 놓고 보면 에이스 데이비드 뷰캐넌 다음으로 누가 나와도 크게 이상할 건 없다. 원태인은 도쿄올림픽 이후 전반적으로 다소 주춤했지만 백정현은 시즌 내내 꾸준했다.
팀내 최고의 투수 3명을 3전2선승제 시리즈의 첫 2경기에 쏟아붓는 전략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럼에도 삼성이 원태인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은 뼈아픈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허삼영 감독은 백정현 다음으로 원태인을 붙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상황에 따라 달라질 여지는 있지만 그렇게 큰 틀을 잡았다고 했다.
삼성은 출발부터 꼬였다. 백정현이 1회에 안타 3개와 희생플라이를 내주고 2실점 했다.
0대2로 뒤진 삼성은 2회초 만루 기회를 잡았다. 이때 두산 불펜에는 선발 김민규가 무너졌을 때를 대비해 투수들이 몸을 풀기 시작했다. 김민규는 실점 없이 막았다.
백정현은 2회에도 흔들렸다. 1사 2루에서 김재호에게 적시 3루타를 맞았다. 그러자 삼성은 투수를 바꿨다. 최지광이 올라왔다.
하지만 최지광은 볼넷 이후 호세 페르난데스에게 2타점 2루타를 맞았다. 스코어가 0대5로 벌어졌다. 계속된 2사 2루에서 삼성은 또 한번 투수를 바꿨다. 원태인이었다.
벼랑 끝 승부에서 초반 점수차가 더 크게 벌어지지 않게 막는 것 역시 지고 있는 팀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숙제다. 원태인은 이 같은 역할을 맡기에 과분한 투수다.
원태인이 동점 혹은 앞서있는 상황에서 등판하지 못하는 상황은 삼성에게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그래서 허삼영 감독이 초반 승부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원태인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초반 승부가 대등하게 펼쳐져야 했지만 삼성이 너무 일찍 무너졌다.
원태인은 올해 큰 경기 경험을 많이 쌓았다. 도쿄올림픽이 대표적이다. 비록 대표팀은 실패로 끝났지만 선수 개인에게는 엄청난 자산이 됐을 경험이다.
더불어 1위 결정전은 포스트시즌 못지 않은 승부였고 원태인은 이 경기에서 에이스 역할을 해낸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삼성은 원태인의 이 같은 경험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기세가 꺾인 상황에서 등판한 원태인은 1⅓이닝 2실점 3사사구 2실점의 초라한 성적으로 포스트시즌 데뷔전을 마쳤다.
선발 백정현은 1⅓이닝 5피안타 4실점에 그쳤다. 허삼영 감독이 반격 키워드로 삼았던 '백정현+원태인' 카드는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삼성은 3대11로 졌다. 6년 만의 가을야구는 허무하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