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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통보제, 파일럿이랑 승무원에게 출입국 맡기는 셈"

보건/의료

    "출생통보제, 파일럿이랑 승무원에게 출입국 맡기는 셈"

    수원 냉장고 영아 살해 사건 이후 출생통보제 도입 시동 걸었지만 정작 산부인과 의사들은 반대
    의료계 "병원, 이미 심평원에 출생 보고…정부, 열악한 의료 환경에 행정적 부담까지 지우려 해"
    복지부 "출생정보 통보방법에 대해 의료계와 논의 원만하게 진행 중"…정부·여당, 법안 통과 추진

    연합뉴스연합뉴스
    병원에서 태어난 아이는 엄마 손에 죽었다. 아이들이 발견된 곳은 집 안 냉장고 안. '출생'은 했지만 '신고'는 하지 않았던 탓에 죽어서도 냉동고 안에서 5년을 지내야했다.

    갓 태어난 아기의 안타까운 죽음을 둘러싸고 어른들의 뒤늦은 반성은 요란했다.

    아이들이 죽지 않으려면 어떻게 했어야 할까. 빗발치는 뉴스 속보 속 '만약'이라는 의미 없는 가정법이 쏟아져 나왔다.

    '출생신고제'는 어른들이 내놓은 반성문 중 하나다. 의료기관이 아동의 출생 정보를 지자체에 통보해 직권으로 출생 기록을 남기는 제도로, 지난해 정부가 입법 발의를 한 상태다.

    보건복지부는 태어나서도 등록되지 않은 이른바 '유령 아동'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하는 한편, 출생신고제를 조속히 도입하겠다는 방침이다.

    냉장고 안에서 발견된 아이 모두 병원에서 출산했기 때문에 의료진이 부모 대신 출생신고를 하면, 지금처럼 법의 사각지대에서 사망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게 복지부의 설명이다.

    이기일 복지부 1차관은 지난 22일 브리핑에서 "의료계와 함께 출생정보 통보방법에 대한 논의가 원만하게 진행중"이라며 "의료계와 지속적인 접촉을 통해 상호 의견을 조율중"이라고 전했다.

    "출생통보제, 필수의료 벼랑 끝으로 내몰 것"…정부, 현장 의료진 반대 잠재울 수 있을까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신생아 번호 관리 아동 실태조사방안 등 아동학대와 관련한 대응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정부는 출신신고 되지 않은 아동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연합뉴스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신생아 번호 관리 아동 실태조사방안 등 아동학대와 관련한 대응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정부는 출신신고 되지 않은 아동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하지만 출생통보제를 두고 의료계와 정부의 온도차가 크다.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지난 4월 성명서를 내고 정부가 과도한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의사회는 "이미 출산에 따른 행위 수가를 모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보고하고 있다"며 아동 보호를 민간 의료기관에 떠넘기는 데 대해 국가의 능력이 의심스럽다"고 맹비난했다.

    의협 등 의료계는 "정부가 현장의 목소리는 무시한 채 입법을 성과처럼 여기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 의료진은 법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의료 현장은 열악한데 정부가 의료진에게 행정적 부담을 가중시고 있다"며 "의사는 환자의 건강을 지켜주는 역할이지 환자 정보를 입력하고 관리하는 건 행정적인 분야"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기존에 심평원과 건보공단 등 공공기관이 신생아 정보를 관리하고 의료기관이 협조할 수 있는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며 "지금의 방식은 파일럿과 승무원에게 출입국 관리를 맡기는 꼴"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낮은 수가와 소송 등으로 기피 과가 된 산부인과를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모는 일"이라며 "결국엔 필수의료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부와 여야 모두 출생통보제 도입에 찬성 입장이어서 입법 과정에서 의료계와 충돌도 예상된다.

    의료 현장의 반대 여론이 높아 법 추진 강행 시 제2의 간호법이 될 소지도 있다.

    의협 관계자는 "법안 추진 단계부터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의견을 냈지만 정부측과 공식 논의는 시작하지 않았다"며 "국회 복지위 의원들을 중심으로 의견을 개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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