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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작렬]홍범도 유해도 돌려보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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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뒤끝작렬]홍범도 유해도 돌려보내야 하나

    편집자 주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육사, 흉상 철거키로…국방장관 "공산주의 경력 있어서야 되겠나"
    소련 공산당에 입당했지만 나라 잃고 타국서 싸워야 했던 불가피성
    머슴, 포수, 의병, 독립군 파란만장 인생…부인과 두 아들도 희생 당해
    정부의 오래 노력 끝에 2021년 유해 봉환…현지 고려인 사회 어렵게 설득
    꿈에도 그렸을 해방 조국에 넋으로 돌아왔지만 편치 않을 듯

    지난 2021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홍범도 장군 유해 안장식에서 의장대가 홍범도 장군의 영정과 유해를 들고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지난 2021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홍범도 장군 유해 안장식에서 의장대가 홍범도 장군의 영정과 유해를 들고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육군사관학교가 교내 설치된 김좌진, 홍범도, 이회영 등 독립군 장군과 독립투사의 흉상을 철거하기로 하면서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있다.
     
    육사는 25일 "학교 정체성과 설립 취지를 구현하고 자유민주주의 수호 및 한미동맹의 가치와 의의를 체감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기념물 재정비 사업을 추진 중"이라며 이들 흉상을 육사 외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보다 직설적으로 이유를 설명했다. 이 장관은 이날 국회 답변에서 "장교를 양성하는 기관에 공산주의 활동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되느냐 이런 문제도 있었고"라고 말했다.
     
    이 장관의 기준에 따르면 5명의 흉상 가운데 홍범도 장군이 특히 문제가 되는 것 같다. 나머지 4명은 특별히 공산주의 전력이 문제될 게 없다.
     
    국방위 출석한 이종섭 국방장관. 연합뉴스국방위 출석한 이종섭 국방장관. 연합뉴스
    육사는 '기념물 재정비' 명분을 내세웠지만 사실은 홍범도의 '색깔'이 못마땅한 셈이다.
     
    물론 홍범도 장군의 공산주의 전력은 사실이다.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홈페이지를 보더라도 그는 1922년 극동민족대회에서 당시 소련 지도자 레닌으로부터 권총 선물을 받았고 1927년에는 소련 공산당에 입당까지 했다.
     
    하지만 이는 나라를 잃고 타국에서 독립투쟁을 해야 했던 처지에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항일 무장투쟁세력은 1920년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에서 승전보를 울렸지만 이듬해 자유시 참변과 일본군의 연해주 출병으로 궤멸적 타격을 입고 각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소련 영내로 들어간 홍범도 장군은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까지 당했고 이후 고국으로 돌아갈 길이 묘연해지면서 소련 공민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고려인 극장의 경비원으로 일하며 말년까지 꿋꿋하게 민족혼을 지키다 일본 패망을 2년 앞두고 이역만리에서 쓸쓸히 눈을 감았다.
     
    전처는 한참 전 일제 감옥에서 옥사했고 의병활동을 함께 한 두 아들도 오래 전 먼저 떠나보낸 뒤였다.
     
    이런 역사적 맥락을 감안해서인지 정부는 박정희 집권 때인 1962년 일찌감치 홍범도 장군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또 김영삼 정부 이래 우리 측의 계속된 유해 봉환 노력 끝에 2021년 광복절에 넋으로나마 돌아왔다. 카자흐스탄 정부와 현지 고려인 사회를 어렵게 설득한 끝에 이뤄진 영웅의 귀환이었다.
     
    구한말 평양 근처에서 머슴의 자식으로 태어난 홍범도 장군의 인생은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머슴살이, 평양 감영의 나팔수, 금강산 승려, 강원도 포수, 의병대장,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등이 그의 생애다. 그에 비해 공산주의 경력은 작고 희미했다.  
     
    썩어 문드러진 조선 왕조에서 수탈 받는 최하층 민초였지만 그런 나라를 위해 평생을 헌신했고 가족들이 희생됐다. 망한 왕조의 후손들은 일제의 작위를 받고 여전히 안온한 삶을 살아갈 때였다.
     
    홍범도 장군 유해가 지난 2021년 8월 15일 한국으로 봉환되기 위해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공항에서 국군의장대에 의해 특별수송기(KC-330)에 모셔지는 모습. 국가보훈처 제공홍범도 장군 유해가 지난 2021년 8월 15일 한국으로 봉환되기 위해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공항에서 국군의장대에 의해 특별수송기(KC-330)에 모셔지는 모습. 국가보훈처 제공
    흉상 철거를 앞둔 홍범도 장군은 지하에서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
     
    그의 성품으로 미뤄 "내 흉상은 없애도 좋으니 다른 분들은 건드리지 말아 다오. 그리고 나의 유해도 이 참에 카자흐스탄으로 돌려보내 다오" 하며 눈물짓는 씁쓸한 상상을 해본다.
     
    꿈에도 그렸을 해방된 조국에서도 그의 영혼은 편치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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