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변호사 살인사건' 피고인 김모(55)씨. 고상현 기자22년 전 제주의 한 거리에서 이승용 변호사가 흉기에 찔려 살해된 사건을 공모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직 조직폭력배 조직원 50대 남성이 재판부에 '국민참여재판'을 받겠다고 신청했다.
한 방송을 통해 범행을 자백한 것으로 알려진 이 남성은 "방송 내용이 왜곡되고 과장됐다"라고 하는가 하면 "수사 기관이 (자신을) 살인범으로 규정지었다"라고 하는 등 억울함을 호소했다.
피고인 "살인범으로 규정지어…국민 판단 받고 싶다"
6일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장찬수 부장판사)는 살인(공모 공동정범)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모(55)씨 사건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첫 공판을 앞두고 김씨가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자 논의하기 위해서다.
황색 수의를 입고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피고인석에 앉은 김씨는 "(지난 8월 캄보디아에서) 한국으로 송환되고 진행되는 과정을 봤을 때 무죄 추정 원칙이라는 게 지켜지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이어 "저를 살인범으로 규정짓고 (검‧경 수사 등) 모든 게 이뤄졌다"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김씨는 의견서를 통해서도 "방송에 인터뷰한 내용이 조작되고 과장되게 보도됐다"라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김씨는 "백지 상태에서 국민들의 판단을 받아보고 싶다"라고 설명했다.
검찰 역시 "증거에 입각한 사실 관계가 분명하기 때문에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피고인에게 유‧무죄부터 양형까지 판단하는 게 현명하다고 보고 있다"라며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 안 모습. 고상현 기자양 측 의견을 들은 재판장은 "보통 국민참여재판은 재판을 여러 번 하면 사건 기록 내용 등 비밀 유지가 상당히 어렵다. 이 때문에 한 기일에 증인 신문부터 선고까지 하는 게 관례"라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의 경우 법정에 소환해야 할 증인들도 많고, 사건 기록도 1천 쪽에 이르는 등 방대하다. 하루에 끝내야 하는 국민참여재판으로 하면 재판 진행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우선 재판부는 오는 11월 3일 2차 공판준비기일 때까지 변호인과 검찰 측에 증거 제출부터 증거에 대한 의견 등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를 보고 국민참여재판 진행 여부를 판단하기로 했다.
22년 전 살해된 이 변호사…앞으로 재판 쟁점은?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1999년 8월과 9월 사이 성명 불상자의 지시를 받아 동료 A씨(2014년 사망)와 구체적인 범행 방법을 상의하고 이 변호사(당시 44세)를 미행해 동선을 파악했다.
이후 A씨는 같은 해 11월 5일 오전 3시 15분과 오전 6시 20분 사이 제주시 제주북초등학교 인근 거리에서 흉기로 이 변호사의 가슴과 복부를 3차례 찔러 살해한 것으로 검찰은 판단했다.
'제주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 피고인 김모(55)씨. 고상현 기자이 사건 재판의 쟁점은 두 가지다. 우선 김씨를 '공범'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다. 검찰은 김씨가 직접 살해를 하지 않더라도 A씨와 살해 범행을 공모한 것으로 봤지만, 김씨는 부인하고 있다.
두 번째 쟁점은 '공소시효' 만료 여부다. 원래 이 사건 살인죄 공소시효는 지난 2014년 11월 4일 자정부로 지났지만, 김씨가 해외로 도피하며 공소시효가 정지돼 2015년 12월까지 연장됐다.
그 사이 살인죄 공소시효가 사라진 '태완이법'이 시행됐다는 게 검찰 설명이다.
검찰은 '범인이 형사처벌을 피할 목적으로 국외로 가면 그 기간 공소시효는 정지된다'는 형사소송법 조항을 근거로 이렇게 판단했다. 반면 김씨는 "처벌을 피하려고 도피한 적 없다"라고 맞섰다.
1999년 11월 5일 제주 변호사 피살 현장 감식에 나선 경찰. 연합뉴스한편 제주출신인 이승용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 24회에 합격해 검찰에 입문했다. 김진태 전 검찰총장과 추미애 법무부장관, 홍준표 국회의원 등과 사법시험 동기다.
이 변호사는 서울지검과 부산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한 다음 1992년 고향인 제주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하지만 제주에 내려온 지 7년 만에 잔혹하게 살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