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베이징 캐피털 실내 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녀 혼성 계주 결승전에서 중국 선수들이 우승을 확정 지은 뒤 오성홍기를 들고 링크를 돌고 있다. 연합뉴스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에서 '피겨 여왕' 김연아(32)는 억울하게 2회 연속 금메달이 무산됐다. 완벽한 연기를 펼쳐 여왕의 화려한 퇴위식을 금빛으로 장식하나 싶었지만 개최국 러시아가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인 피겨 여자 싱글 '골드 프로젝트'에 허망하게 2위로 밀려나고 말았다.
당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직접 불러 우승을 신신당부했던 것으로 알려진 선수는 율리아 리프니츠카야. 그러나 리프니츠카야가 쇼트 프로그램에서 부진하자 아델리나 소트니코바가 대체 선수로 급부상했고, 프리 스케이팅에서 김연아는 석연찮은 판정 속에 금메달을 내줘야 했다.
외국 언론들은 "심판들이 김연아의 금메달을 훔쳤다"며 맹비난했다. 소트니코바는 올림픽 이후 부상을 핑계로 국제 대회 출전을 기피하더니 금지약물 복용 의혹까지 받았다. 소트니코바는 역대 최악의 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챔피언으로 남게 됐다.
김연아는 첫 금메달을 따냈던 밴쿠버올림픽과 달리 소치 대회 때는 울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 이후 기자회견에서도 의연하게 "나보다 더 간절한 사람에게 금메달을 줬다고 생각하자고 어머니와 얘기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기 후 무대 뒤쪽에서 휴지로 눈물을 닦아내는 장면이 올림픽 주관방송사인 미국 NBC의 카메라에 잡혔다.(김연아는 눈물의 의미에 대해 억울함이 아니라 후련함의 의미였다고 했다.)
2014년 소치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시상식 당시 김연아(왼쪽부터)가 소트니코바, 이탈리아의 카롤리나 코스트너와 나란히 선 모습. 대한체육회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은 데자뷰처럼 8년 전 소치 대회를 떠오르게 한다. 개최국 중국이 야심차게 준비한 금메달 프로젝트에서 러시아의 고약한 냄새가 풍기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피겨가 아닌 쇼트트랙이라는 것이다.
중국은 5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대회 쇼트트랙 2000m 혼성 계주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베이징올림픽부터 신설된 혼성 계주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하지만 준결승에서 논란의 장면이 있었다. 당초 중국은 3위로 결승선을 통과해 결승행이 좌절되는 듯했다. 그러나 비디오 판독 끝에 결승 진출로 번복됐다.
중국은 준결승에서 결승점까지 13바퀴를 남긴 가운데 선수 교대를 하다 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앞선 런쯔웨이와 뒤에서 오던 장위팅 사이에 러시아 선수가 끼면서다. 러시아 선수의 터치를 런쯔웨이는 동료인 장위팅이 한 것으로 알고 속도를 높여 빙판을 질주했다. 이런 사정을 알고 있는 장위팅이 사력을 다해 쫓아갔지만 남자 선수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육상 계주로 따지면 바통을 전달하지 못한 셈이다.
5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인도어 스타디움에서 열린 쇼트트랙 혼성 계주 예선전에서 최민정(오른쪽)이 판커신과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박종민 기자하지만 심판진은 10분여의 판독 끝에 중국의 터치 진로를 방해했다며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를 실격시켰다. 미국 역시 교체 선수가 일찍 레이스 라인(블루 라인)에 진입했다는 이유로 페널티를 받았다. 선수 교대 때 터치가 전혀 되지 않은 중국은 전혀 페널티를 받지 않았다. 경기 후 미국 여자 대표팀 마메 바이니는 "참 재밌는 판정이었다"고 꼬집었다.
한국 대표팀 맏형 곽윤기(고양시청) 역시 편파 판정을 시사했다. 6일 훈련을 마친 뒤 곽윤기는 "준결승을 직접 지켜봤는데 (중국까지) 3개 팀이 실격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고 네덜란드 선수들도 같은 말을 했다"면서 "터치가 안 된 상황에서 경기를 진행한 것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는데 다른 나라였다면 결승에 오를 수 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자국에서 최초로 열리는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쇼트트랙 성적에 심혈을 기울였다. 세계 최강으로 꼽히는 한국 대표팀 출신 인재들을 끌어모았다. 평창올림픽 사령탑을 지낸 김선태 감독을 영입했고, 2006년 토리노와 소치 대회 3관왕에 오른 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 안)를 코치로 모셔왔다.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중국 쇼트트랙 대표팀을 이끄는 김선태 감독(오른쪽)과 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 안). 베이징(중국)=박종민 기자평창올림픽 남자 1500m 금메달리스트 임효준까지 귀화시켰다. 물론 임효준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규정과 중국 대표 선발전 탈락으로 올림픽에 나서지 못하지만 적어도 중국은 라이벌 한국이 에이스를 잃었다는 소득을 얻었고, 실제로 전력이 약해진 한국은 혼성 계주부터 예선 탈락했다.
경기 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중국 남자 간판 우다징은 "한국인 코치진이 이번 우승에 얼마나 도움이 됐나"라는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그러나 중국 선수들은 중계 인터뷰에서는 코치진에 대한 고마움을 드러냈다. 국내 팬들에게 '나쁜 손'으로 알려진 여자 간판 판커신은 "코칭스태프가 모두 응원해줬다"고 했고, 취춘위도 "지도자들에게 감사한다"고 밝혔다. 한국인 코치라는 명확한 표현은 없었지만 감사의 인사를 전한 것이다.
중국은 최강의 라이벌로부터 노하우를 습득한 데다 개최국의 이점까지 업고 쇼트트랙 첫 종목부터 금메달을 따냈다. 김선태 감독은 준결승에 대해 "판정은 심판이 내리는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그러나 중국을 제외한 대다수의 선수들은 판정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쇼트트랙은 7일 여자 500m와 남자 1000m 등 개인전이 이어진다. 남녀 1500m와 계주까지 8개의 금메달이 아직 남아 있다. 과연 중국의 '쇼트트랙 굴기(倔起)'가 남은 종목에서도 이어질 수 있을까. 중국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반도체 및 축구 등 각종 굴기는 실패로 끝난 경우가 적잖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