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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B컷]공수처 압수수색 어땠기에 "위법" 딱지 붙었나

법조

    [법정B컷]공수처 압수수색 어땠기에 "위법" 딱지 붙었나

    [편집자주]

    ※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공수처, 압수물 없이 빈손 복귀했는데도 법원 '제동'
    영장 범위에 없는 수색, 참여권 보장도 대충
    공무집행방해로 피압수자 고발까지…적반하장 비판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수사관들이 지난 9월 13일 국민의힘 김웅 의원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로 압수수색을 위해서 들어가고 있다. 윤창원 기자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수사관들이 지난 9월 13일 국민의힘 김웅 의원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로 압수수색을 위해서 들어가고 있다. 윤창원 기자
    ▶ 2021.12.03. 김웅 의원 압수수색 집행에 대한 준항고 결정문
    "공수처 측은 김웅 의원 보좌관의 PC가 김 의원이 사용하거나 관리하는 것인지(압수수색 대상이 될지) 살피기 위해 5~10분가량 보좌관의 PC에 '조국', '재수' 등 키워드를 입력해 검색하는 방식으로 수색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위와 같은 키워드 검색은 해당 PC에 이 사건 영장 기재 범죄사실과 관련된 전자정보가 저장되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절차에는 해당할지언정, 김 의원이 위 PC를 사용 또는 관리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필요최소한의 적절한 활동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한 수색에도 불구하고 보좌관의 PC를 김 의원이 관리한다고 볼만한 특별한 사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정치와 경제, 생활의 다양한 영역들에서 생긴 분쟁이 그 현장에서 해소되지 못하고 사법적 판단을 구하는 일이 많아지는 요즘. 덕분에 우리 국민들은 시시때때로 뉴스에서 어려운 법률용어를 마주치고 공부하고 있죠.
       
    최근 공부 대상이 된 법률용어 중 '준항고'가 있었습니다. 준항고는 법관의 재판이나 검사, 경찰의 처분에 불복해 법원에 다시 한 번 판단을 구하는 절차입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부터 압수수색을 당한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압수수색 당시 적법절차가 지켜지지 않았다며 준항고 소송을 냈는데, 법원에서 받아들여졌습니다. 공수처로서는 체면을 크게 구기게 된 셈이죠.
       
    오늘 법정B컷은 법정을 벗어나 그날 압수수색 현장으로 가보려 합니다. 공수처는 영장에 기재된 대상도 아닌 기물들을 수색하는가 하면, 당사자와 변호인 참여 없이 수색을 하다가 결국 일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빈손으로 철수했습니다. 검찰의 편파적인 또는 무절제한 수사로 인한 인권침해를 지적하며 출범한 공수처가 어쩌다 수사의 ABC도 못 지켰다는 비판을 받게 된 것일까요.
       
    국민의힘 김 의원이 압수수색에 대한 입장을 밝힌 후 의원실로 들어가고 있다. 윤창원 기자국민의힘 김 의원이 압수수색에 대한 입장을 밝힌 후 의원실로 들어가고 있다. 윤창원 기자김웅 의원 측은 여러 가지 절차적 위법을 지적했지만 법원이 인정한 부분은 크게 3가지입니다. ①압수수색 사전 통지 안하고 당일 참여권도 미보장 ②영장 미제시 ③영장 범위 넘어선 수색입니다.
       
    김 의원은 현재 공수처에서 수사 중인 이른바 '고발사주' 의혹의 핵심 인물입니다. 검찰 내부에서 여권 인사에 대한 고발장이 작성됐고 이를 야당 측에 전달해 고발하려 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건인데, 이 고발장을 텔레그램으로 전달받은 게 김 의원입니다.
       
    공수처는 지난 9월 10일 아침 9시25분쯤 김 의원의 집으로 찾아가 압수수색영장을 제시하고 수색에 나섰습니다. 동시에 다른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들은 김 의원의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 찾아가 압수수색을 벌였죠.
       
    영화나 드라마에서 압수수색은 사전통지는 커녕 수사기관 관계자들이 보란 듯이 현장을 급습해 물건을 쓸어 담는 식으로 묘사되지만, 실제 법은 그렇지 않습니다. 형사소송법과 대법원 판례는 수사기관이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할 때 피압수자나 변호인이 그 집행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참여권을 보장하기 위해 피압수자가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시하거나 급속을 요하는 때를 제외하면 미리 압수수색 영장 집행 일시와 장소를 통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공수처는 김 의원 측에 아무런 사전 통지도 하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국회 사무실에는 김 의원과 변호인이 없어 보좌진들만 수사팀의 압수수색을 지켜보게 됐습니다. 공수처는 김 의원에게 국회 사무실에서의 압수수색에 참여하겠냐는 의사를 물어봤고 "가지 않겠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김 의원은 그런 질문을 들은 적도 없다고 반박합니다.

    실제 준항고 소송 과정에서 공수처는 말로만 그러한 주장을 했을 뿐, 김 의원이 압수수색 참여권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서면이나 녹화, 녹취, 전화·문자기록 등은 전혀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 2021.12.03. 김웅 의원 압수수색 집행에 대한 준항고 결정문
    "동시에 여러 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할 현실적인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피압수자가 어느 한 곳에서 영장 집행을 당하면서 다른 장소의 영장집행에도 참여하길 원할 경우 그 참여권 보장을 위해 한쪽의 영장 집행을 중단할 필요가 있다. … 이때 수사기관은 그 중단 현장에 타인의 출입을 금지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으므로 증거인멸 우려를 충분히 방지할 수 있다.

    한편 공수처는 영장 범위를 넘어선 수색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김 의원 사무실에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됐다고 해서 아무 물건이나 뒤져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건과 관련이 있는, 피압수자가 보관하거나 사용하는 물건 등 영장집행 대상에 한해서만 공권력이 개인의 영역을 침범할 수 있도록 엄격히 제한되기 때문이죠.
       
    그런데 공수처는 김 의원이 일하는 공간이나 사용하는 PC가 아니라 보좌진들이 사용하는 공간의 책상과 캐비닛, 서류 등을 수색하고 보좌진의 PC에 '조국, 재수, 건희, 오수, 경심, 미애' 등을 검색했습니다. 보좌진들이 이 수색에 항의하며 영장을 보여 달라고 했지만 피압수자 당사자가 아니라며 거부했고요.
       
    공수처는 이러한 검색을 통해 김 의원이 사용하는 PC인지 확인해보려 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법원은 이 역시 믿지 않았습니다. 키워드 검색 내용이 단순히 김 의원의 사용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차원으로 보기 어렵고, 혐의사실과 관련된 정보탐색을 하는 수준이어서 해당 PC를 위법하게 수색한 것으로 봐야한다는 겁니다.
       
    ▶ 2021.12.03. 김웅 의원 압수수색 집행에 대한 준항고 결정문
    "위법한 수색이 있었음에도 그에 뒤따르는 압수처분이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수색을 당한 사람이 준항고로 다툴 수 없다면 법원의 영장발부 범위를 넘어 이뤄진 수사기관의 위법한 수색처분을 통제할 수 없다. … 헌법은 압수뿐 아니라 수색에 관해서도 영장주의와 적법절차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압수 결과가 없는 위법한 수색에 의해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면 이를 충분히 회복시켜 줄 필요가 상당히 크다. 위법한 수색 전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그 회복은 수사기관의 처분이 위법함을 선언함으로써 이뤄질 수 있다.
         
    공수처. 연합뉴스공수처. 연합뉴스공수처는 결국 이번 압수수색에서 건진 게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번 준항고의 실익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같은 주장도 꾸짖었습니다. 특히 공수처가 김웅 의원 등을 상대로 영장집행을 위법하게 저지했다며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고발했기 때문에, 오히려 공수처의 영장집행이 위법했다는 것을 더더욱 밝혀줄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공수처는 이번 법원 결정에 불복해 대법원에 재항고했습니다. 만약 준항고 인용 판단이 대법원에서도 유지된다면, 공수처는 무리한 압수수색을 벌여놓고 이에 항의한 대상자를 오히려 고발까지 하며 공권력을 남용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공수처는 최근 고발사주 사건과 관련해 김 의원에게 고발장을 전달한 것으로 의심되는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에게 두 번째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기각됐습니다. 공수처 출범 후 세 차례의 인신 구속 관련 영장이 모두 손 검사에 대해 청구됐는데 3전 3패입니다. 손 검사 역시 김 의원처럼 압수수색에 대한 준항고도 신청해둔 상탭니다.
       
    물론 피의자 구속은 증거인멸이나 도주 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수사를 좀 더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한 도구일 뿐 수사 자체의 성패를 논할 일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압수수색을 통한 증거수집부터 피의자 신병 확보까지 공수처의 행보에는 '정의구현을 위한 일이므로 정당하다'는 위험한 인식이 엿보여 우려됩니다.
       
    어떤 범죄혐의가 그 사회의 정의와 합법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일수록, 국가는 법치를 더욱 엄격하게 지켜내야 합니다. 검찰개혁으로 없애고자 했던 과거의 병폐를 그대로 답습할 뿐이라면, 공수처는 겨우 검찰로부터 나눠가진 기소권을 다시 고스란히 검찰이 독점하도록 넘겨주는 '공'을 세운 기관으로 기록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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